로마서 7장(Romans)
결혼 비유로 설명하는 율법과의 관계
1형제들아, 법을 아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법이란 것은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만 그를 지배한다는 것을 모릅니까?
2예를 들어, 남편이 있는 여인은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법으로 남편에게 매여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죽으면 남편에 관한 법에서 풀려납니다.
3그러므로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 다른 남자에게 가면 간음한 여인이라 불리겠지만,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어 다른 남자에게 가더라도 간음한 여인이 되지 않습니다.
4이와 마찬가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을 통해 율법에 대해서는 죽은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분,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분에게 속하게 되어,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열매를 맺게 하려는 것입니다.
5우리가 육신에 속해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자극받은 죄의 정욕(情慾)이 우리 몸의 각 부분에서 활동하여, 죽음을 위한 열매를 맺게 했습니다.
6그러나 이제 우리는 우리를 붙잡고 있던 것에 대해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풀려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 조문이라는 낡은 방식이 아니라, 영(靈, the Spirit)의 새로운 방식으로 섬깁니다.
배경 설명
바울은 결혼법을 비유로 사용합니다.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결혼법에서 자유로워지듯이,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으로써 율법의 구속력에서 벗어났습니다. 이것은 율법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율법과의 관계가 변했다는 뜻입니다. 이전에는 율법의 요구 아래 정죄받는 관계였지만, 이제는 성령의 능력으로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새로운 관계가 된 것입니다.
핵심 요약: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으로써 율법의 속박에서 풀려나, 🔥성령의 새로운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율법과 죄의 관계 — 선한 율법을 악용하는 죄
7그러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율법이 곧 죄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율법이 아니었으면 나는 죄를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율법이 "탐내지 말라"고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탐심(貪心, covetousness)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8그런데 죄가 기회를 잡아 계명을 이용하여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일으켰습니다. 율법이 없으면 죄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9한때 율법을 모를 때는 내가 살아 있었는데, 계명이 다가오자 죄가 살아나고 나는 죽었습니다.
10🌿생명으로 이끌어야 할 그 계명이, 오히려 나에게 죽음으로 이끄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11죄가 기회를 잡아 계명을 이용하여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습니다.
12이로 보건대, 율법 자체는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합니다.
13그렇다면 선한 것이 나에게 죽음이 되었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죄가, 자신이 죄임을 드러내기 위해, 선한 것을 이용하여 나를 죽게 만든 것입니다. 이것은 계명을 통해 죄가 얼마나 극심하게 죄된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배경 설명
바울은 율법과 죄의 관계를 정밀하게 분석합니다. 율법 자체는 선하지만, 죄가 율법을 "이용"합니다. 마치 좋은 약이 있을 때 질병이 그 약에 반응하여 더 격렬하게 드러나듯이, 율법이 "하지 말라"고 할 때 죄는 오히려 그것을 자극제로 삼아 더 맹렬하게 활동합니다. "탐내지 말라"는 십계명의 열 번째 계명(출 20:17)으로, 외적 행위가 아닌 내면의 욕망을 다루기에 죄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냅니다.
핵심 요약: 율법 자체는 ⭐거룩하고 선하지만, 죄가 율법을 악용하여 인간을 죽음으로 이끕니다. 율법의 역할은 죄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죄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내면의 갈등 — 선을 원하지만 악을 행하는 비참함
14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율법은 영적인 것인데, 나는 육신에 속한 자로서 죄 아래 팔린 몸입니다.
15내가 하는 행동을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미워하는 것을 행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16만약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행한다면, 이것으로 율법이 선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입니다.
17그렇다면 이제 그것을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죄입니다.
18내 안에, 곧 내 육신 안에 선한 것이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 선을 원하는 마음은 있으나, 그것을 실행하는 능력이 없습니다.
19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악을 도리어 행하고 있습니다.
20만약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행한다면, 그것을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죄입니다.
21그래서 나는 하나의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선을 행하려고 할 때마다 악이 바로 곁에 달라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22내 속사람(inner self)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기뻐하지만,
23내 몸의 각 부분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싸우며, 내 몸 안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잡아가는 것을 봅니다.
24오,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이 죽음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줄 것입니까?
25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결론적으로, 나 자신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지만,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다.
배경 설명
이 구절의 "나"가 회심 전의 바울인지, 회심 후의 바울인지, 아니면 보편적 인간 경험을 대변하는 것인지에 대해 오래된 신학적 논쟁이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종교개혁자들은 이것을 그리스도인의 지속적 내면 갈등으로 보았고, 웨슬리 전통은 회심 전의 상태로 해석했습니다. 어느 해석이든, 핵심은 인간 자신의 힘으로는 죄를 이길 수 없다는 것과,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24절의 절박한 외침은 8장의 승리의 선언으로 이어지는 극적인 전환점입니다.
핵심 요약: 인간은 선을 원하면서도 악을 행하는 깊은 내면의 갈등 속에 있으며, 이 비참함에서 건져줄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