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4(James)

세상과 벗하지 말라

1여러분 가운데 싸움은 어디서, 다툼은 어디서 옵니까? 여러분의 지체 안에서 전쟁을 벌이는 쾌락(헬라어: ἡδονή, 헤도네 - 쾌락, 영어 hedonism의 어원)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까?
2여러분은 욕심을 내면서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고, 시기하면서도 차지하지 못하니 다투고 싸웁니다. 여러분이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요,
3구하여도 받지 못하는 것은 자기 쾌락에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
4불신실한 자들이여! 세상과 벗이 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임을 알지 못합니까? 그러므로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5👑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할 정도로 간절히 사모하신다는 성경 📜말씀을 헛된 것으로 생각합니까?
6그러나 👑하나님은 더욱 큰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7그러니 👑하나님복종(submit)하십시오. 마귀를 대적하십시오. 그러면 마귀가 여러분에게서 도망칠 것입니다.
8👑하나님을 가까이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가까이하실 것입니다. 죄인들이여, 손을 깨끗이 하십시오.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이여, 마음을 성결하게 하십시오.
9슬퍼하고 애통하며 우십시오. 여러분의 웃음을 애통으로,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꾸십시오.
10주 앞에서 자신을 낮추십시오. 그러면 주께서 여러분을 높여 주실 것입니다.
배경 설명
4절의 "간음한 여인들아"(원문)는 문자적 간음이 아닌 영적 간음, 즉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따르는 배신을 뜻하는 구약적 비유입니다(호세아서 참조). 6절의 인용은 잠언 3:34에서 가져온 것으로, 베드로전서 5:5에도 동일하게 인용됩니다. 7-10절은 회개의 단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하나님께 복종 → 마귀 대적 → 하나님 접근 → 손과 마음의 정결 → 애통과 회개 → 겸손 → 하나님의 높이심. "손을 깨끗이 하라"는 제사장이 성전에서 봉사하기 전 정결례를 행하던 의식에서 유래합니다.

형제를 비방하지 말라

11형제들이여, 서로 비방(slander)하지 마십시오. 형제를 비방하거나 형제를 판단하는 사람은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율법을 판단한다면, 당신은 율법의 실천자가 아니라 스스로 재판관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12입법자(Lawgiver)이자 재판관(Judge)은 오직 한 분뿐이시며, 그분은 🛡️구원하실 수도 있고 멸하실 수도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대체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합니까?
배경 설명
야고보는 "사랑의 율법"(2:8)을 기준으로 삼아, 형제를 비방하는 행위가 곧 그 율법 자체를 무시하는 것임을 지적합니다. 고대 유대 사회에서 비방(라숀 하라, lashon hara - 악한 혀)은 살인에 비견될 정도로 심각한 죄로 여겨졌습니다. 탈무드에서는 "비방하는 혀는 세 사람을 죽인다 - 말한 사람, 들은 사람, 비방당한 사람"이라고 가르칩니다.

내일을 자랑하지 말라

13자, 들으십시오. "오늘이나 내일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1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여,
14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안개(vapor, 헬라어: ἀτμίς, 아트미스)에 불과합니다.
15여러분은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이라면(Deo volente, 라틴어: 하나님이 원하시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 일 저 일을 하겠다."
16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허풍스러운 자랑을 하고 있으니, 그런 자랑은 모두 악한 것입니다.
17그러므로 선을 행할 줄 알면서도 행하지 않으면, 그것이 곧 (sin of omission - 부작위의 죄)입니다.
배경 설명
당시 유대인 상인들은 로마 제국의 도로망과 무역로를 따라 각지를 돌아다니며 장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야고보는 그들의 사업 계획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한 채 자기 힘만으로 미래를 통제하려는 오만한 태도를 경고합니다. 15절의 "주의 뜻이면"은 라틴어로 'Deo volente'(약자: D.V.)로 번역되어, 서양 기독교 문화에서 편지나 계획을 말할 때 붙이는 관용구가 되었습니다. 17절은 "해야 할 선을 하지 않는 것도 죄"라는 부작위의 죄(sin of omission) 개념을 명확히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