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3장(Esther)
하만의 등장과 유대인 멸절 음모
배경 설명
'아각 사람'이라는 표현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각은 아말렉(Amalek)의 왕으로, 사울 왕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완전히 진멸해야 했지만 살려두었던 자입니다(사무엘상 15장). 아말렉은 출애굽 직후 이스라엘을 가장 먼저 공격한 민족으로(출애굽기 17:8-16), 하나님께서 "대대로 아말렉과 싸우리라"고 선언하신 이스라엘의 숙적입니다(출 17:16). 따라서 하만과 모르드개의 갈등은 개인적 원한을 넘어, 아말렉 대 이스라엘의 영적·역사적 대결의 연장선입니다.
2대궐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하들이 왕의 명령대로 하만에게 무릎 꿇고 절했지만, 모르드개만은 무릎도 꿇지 않고 절도 하지 않았습니다.
3대궐 문의 왕의 신하들이 모르드개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째서 왕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오?"
4날마다 권해도 모르드개는 듣지 않았습니다. 모르드개가 자기는 유대인(예후디, יְהוּדִי)이라고 밝혔기 때문에, 그들은 모르드개의 일이 어떻게 될지 지켜보고자 하만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배경 설명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절하지 않는 유대교 신앙적 이유, 혹은 아말렉의 후손에게 절할 수 없다는 민족적·역사적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는 유대인 신분을 숨기라고 했지만, 자신은 공개적으로 유대인임을 밝힌 것이 주목됩니다.
5하만은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무릎도 꿇지 않고 절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매우 분노했습니다.
6그런데 모르드개의 민족이 유대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하만은 모르드개 한 사람만 죽이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습니다. 아하수에로의 전 제국에 있는 유대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 전체를 멸절시키려고 했습니다.
7아하수에로 왕 재위 12년, 첫째 달 곧 니산월(נִיסָן, Nisan, 양력 3-4월경)에 하만 앞에서 날과 달에 대해 부르(פּוּר, Pur), 곧 제비를 뽑았습니다. 제비가 12째 달 곧 아달월(אֲדָר, Adar, 양력 2-3월경)에 떨어졌습니다.
배경 설명
'부르'는 아카드어로 '제비'를 뜻하며, 이것이 부림절(פּוּרִים, Purim)이라는 명절 이름의 기원입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중요한 일의 날짜를 정할 때 점을 치거나 제비를 뽑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제비가 약 11개월 뒤인 아달월에 떨어진 것은, 유대인들에게 대비할 시간을 준 하나님의 섭리로 해석됩니다. 잠언 16:33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결정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가 이 장면의 신학적 해석을 제공합니다.
8하만이 아하수에로 왕에게 아뢰었습니다. "한 민족이 왕의 나라 곳곳의 백성 사이에 흩어져 살고 있는데, 그들의 법률이 다른 모든 민족의 것과 달라서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않습니다. 이들을 그냥 두는 것은 왕에게 아무 이익이 되지 않습니다.
9왕께서 좋다고 여기시면, 그들을 진멸하라는 칙령을 내려 주십시오. 제가 은(케세프, כֶּסֶף) 1만 달란트(킥카르, כִּכָּר)를 왕의 재정을 맡은 관리들의 손에 맡겨 왕의 금고에 넣겠습니다."
배경 설명
은 1만 달란트는 약 340톤에 해당하는 천문학적 액수로,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페르시아 제국의 연간 세수의 약 2/3에 해당합니다. 하만이 이 거액을 제시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의 엄청난 부를 보여주며, 동시에 학살 후 몰수할 유대인 재산으로 이 비용을 충당하려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만은 유대인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고 '한 민족'이라 모호하게 표현하여 왕을 교묘하게 속였습니다.
10왕은 자기 손에서 인장 반지(탑바아트, טַבַּעַת)를 빼서 유대인의 대적, 곧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에게 주었습니다.
11왕이 하만에게 말했습니다. "그 은은 네게 주겠고, 그 백성도 네게 맡기니 네가 좋을 대로 처리하라."
12첫째 달 13일에 왕의 서기관들이 소집되어 하만의 명령에 따라 칙령을 작성했습니다. 왕의 대신들과 각 지방의 총독들과 각 민족의 관원들에게, 아하수에로 왕의 이름으로, 각 지방의 문자와 각 민족의 언어로 쓰고, 왕의 인장 반지로 도장을 찍었습니다.
13이 칙령을 급사(역졸)들에게 맡겨 왕의 각 지방으로 보냈습니다. 그 내용은 — 12째 달 곧 아달월 13일, 단 하루 만에 모든 유대인을, 젊은이·노인·어린이·여자를 가리지 않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며, 그 재산도 탈취하라는 것이었습니다.
14이 명령을 각 지방에 전파하기 위해, 칙령의 사본을 모든 민족에게 공포하여 그 날을 위해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15급사들이 왕의 명령을 받들어 급히 출발했고, 그 칙령은 수도 수산에서도 반포되었습니다. 왕은 하만과 함께 앉아 술을 마셨지만, 수산 성은 어지럽고 혼란에 빠졌습니다.
배경 설명
마지막 절의 대비가 매우 강렬합니다. 왕과 하만은 한 민족의 몰살 명령을 내려놓고 태연하게 술을 마시는 반면, 수산 성의 백성들은 충격과 혼란에 빠집니다. 이 장면은 권력자들의 잔인한 무감각과 무고한 시민들의 공포를 극명하게 대비시킵니다. '수산 성이 어지럽더라'(나보카, נָבוֹכָה)는 도시 전체가 당혹감과 공포에 휩싸였다는 뜻입니다.
핵심 요약: 하만은 모르드개 한 사람에 대한 분노를 유대 민족 전체의 말살 계획으로 확대하여, 왕의 이름으로 학살 칙령을 제국 전역에 반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