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1(Esther)

아하수에로 왕의 대연회 — 제국의 힘을 과시하다

1이 이야기는 아하수에로(아하쉬베로쉬, אֲחַשְׁוֵרוֹשׁ, Ahasuerus) 왕 시대에 일어난 일입니다. 아하수에로는 인도(India)에서 구스(Cush, 오늘날의 에티오피아 지역)까지 무려 127지방(메디나, מְדִינָה, 행정 구역)을 다스리는 대왕이었습니다.
배경 설명
아하수에로는 그리스 역사에서 크세르크세스 1세(Xerxes I)로 알려진 페르시아 왕입니다. 그는 다리우스 1세의 아들로, 기원전 486-465년에 재위했습니다. 127개 지방은 당시 세계 최대의 제국이었던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의 광대한 영토를 보여줍니다. 인도(힌두 강 유역)에서 에티오피아까지, 현재의 이란·이라크·이집트·터키·인도 서부를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이었습니다.
2당시 아하수에로 왕은 수산(슈샨, שׁוּשַׁן, Susa) 궁에서 왕좌에 앉아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3왕위에 오른 지 3년째 되던 해, 왕은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을 위해 성대한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바사(페르시아, Persia)와 메대(Media)의 군 장수들, 각 지방의 귀족들과 지방관들이 모두 왕 앞에 모였습니다.
배경 설명
수산(수사)은 페르시아 제국의 겨울 수도였습니다. 페르시아에는 수사(행정 수도), 페르세폴리스(의식 수도), 에크바타나(여름 수도), 바빌론(상업 수도) 등 여러 수도가 있었습니다. 재위 3년째 잔치는 기원전 483년경으로, 이때 크세르크세스가 그리스 원정을 계획하며 장수들과 귀족들을 소집한 전략 회의 겸 연회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4왕은 무려 180일(약 6개월) 동안 자기 나라의 풍요로운 (富)와 위엄의 찬란한 영광을 과시했습니다.
5이 기간이 끝나자, 왕은 다시 수도 수산에 사는 높고 낮은 모든 백성을 위해 왕궁 후원 뜰에서 7일 동안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6그 뜰에는 흰색, 녹색, 청색 휘장을 자색(아르가만, אַרְגָּמָן, 왕족의 색깔인 보랏🌟빛) 가는 베 줄로 대리석 기둥의 은고리에 매달아 놓았고, 금과 은으로 만든 걸상들을 화반석(반암), 백석(대리석), 운모석(자개돌), 흑석(검은 대리석)이 깔린 바닥 위에 진열해 놓았습니다.
7술은 금잔으로 마시게 했는데, 잔의 모양이 저마다 달랐습니다. 왕이 워낙 풍족했으므로 왕실의 (어주, 御酒)이 한없이 넘쳤습니다.
8마시는 데에도 규칙이 있었으니, 아무도 억지로 마시게 하지 않았습니다. 왕이 궁중 관리 모두에게 명령하여, 각 사람이 원하는 만큼만 자유롭게 마시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배경 설명
고대 근동의 왕실 연회에서는 보통 왕이 잔을 들면 모두가 따라 마셔야 하는 강제적 관행이 있었습니다. 아하수에로가 '억지로 하지 않게' 한 것은 특별한 관대함의 표시였습니다. 6개월에 걸친 과시와 7일 잔치는 페르시아 제국의 압도적 부와 권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왕의 허영심과 자기과시적 성격도 드러냅니다.
9왕후 와스디(와쉬티, וַשְׁתִּי, Vashti)도 아하수에로 왕궁에서 여인들을 위한 별도의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핵심 요약: 아하수에로 왕은 인도에서 에티오피아까지 127개 지방을 다스리는 대제국의 부와 영광을 6개월 동안 과시하며 대연회를 열었습니다.

와스디 왕후의 폐위 — 왕명 거부와 그 결과

10잔치 7일째 되는 날, 왕은 술기운이 올라 기분이 좋아지자, 어전 내시(사리스, סָרִיס, 환관) 므후만, 비스다, 하르보나(Harbona), 빅다, 아박다, 세달, 가르가스 — 이 일곱 사람에게 명령했습니다.
11"왕후 와스디를 왕후의 관(케테르, כֶּתֶר, 왕관)을 정제하고 내 앞으로 데려오너라. 그녀의 아름다움을 모든 백성과 지방관들에게 보여주겠다." 왕후의 용모가 매우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12그러나 왕후 와스디는 내시가 전한 왕의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왕은 분노가 치밀어 마음속이 불붙는 것 같았습니다.
배경 설명
와스디가 왕명을 거부한 이유는 성경에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고대 유대 전승에 따르면, 술에 취한 남자들 앞에 자신의 아름다움을 전시하라는 것은 왕후의 존엄성에 대한 모독이었을 수 있습니다. 페르시아 왕궁에서 왕의 명령 거부는 곧 반역으로 간주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습니다. 와스디의 거부는 용기 있는 행동이었지만, 당시의 왕권 구조에서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3왕은 법률과 관례를 잘 아는 현자(하카밈, חֲכָמִים)들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왕이 이런 일이 생기면 법과 규례에 밝은 자문관들에게 묻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14당시 왕을 가까이 모시며 왕의 기색을 살피고, 나라의 첫째 자리에 앉은 자들은 바사와 메대의 일곱 지방관, 곧 가르스나, 세달, 아드마다, 다시스, 메레스, 마르스나, 므무간(Memucan)이었습니다.
15"왕후 와스디가 내시를 통해 전한 아하수에로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으니, 법대로 하면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16므무간이 왕과 지방관들 앞에서 대답했습니다. "왕후 와스디는 왕에게만 잘못한 것이 아닙니다. 아하수에로 왕의 모든 지방의 관리들과 백성 모두에게도 잘못한 것입니다.
17왕후가 왕의 부름을 받고도 오지 않았다는 소문이 모든 여인들에게 퍼지면, 그들도 자기 남편을 업신여길 것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왕후 와스디를 불렀는데도 오지 않았다더라'하고 말입니다.
18오늘이라도 바사와 메대의 귀부인들이 왕후의 행동을 듣고 왕의 모든 지방관들에게 같은 식으로 대할 것이니, 멸시와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날 것입니다.
19왕께서 좋게 여기신다면, 와스디가 다시는 왕 앞에 나오지 못하게 하는 칙령(다트, דָּת)을 내리시되, 바사와 메대의 법률에 기록하여 변경할 수 없게 하시고, 그 왕후의 자리를 그녀보다 나은 사람에게 주소서.
배경 설명
'바사와 메대의 법률에 기록하여 변개함이 없게 하라'는 표현은 페르시아 법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왕이 한번 공포한 법령은 왕 자신도 철회할 수 없었습니다(다니엘 6:8, 12). 이 불변의 법률 원칙은 나중에 에스더서의 핵심 갈등 — 하만의 학살 칙령을 어떻게 무효화할 것인가 — 의 중요한 복선이 됩니다.
20왕의 칙령이 이 광대한 전국에 반포되면, 높고 낮은 모든 여인들이 자기 남편을 존경하게 될 것입니다."
21왕과 지방관들이 그 말을 옳게 여겼으므로, 왕은 므무간의 말대로 시행했습니다.
22각 지방의 문자와 각 민족의 언어로 모든 지방에 칙령을 보내어, "남편이 자기 집의 주관자가 되고, 자기 민족의 언어로 말하게 하라"고 명했습니다.
핵심 요약: 와스디 왕후가 술자리에 나오라는 왕명을 거부하자, 왕은 신하들의 조언에 따라 그녀를 폐위시키고 그 자리를 다른 이에게 주기로 했습니다 — 이것이 에스더가 왕비가 되는 길을 여는 👑하나님의 숨겨진 섭리였습니다.